1990년부터 한국청소년도서재단을 만들어 소리소문 없이 학교와 군부대에 책 보내기 운동을 했던 이성원겧恝育?부부는 그들의 곧은 성품만큼이나 꾸준히, 그리고 변함 없이 손이 많이 가는 이 일을 해오고 있다.

요즘 사람들에겐 익숙한 ‘전자동 시스템’이란 그들에게는 없다. 일일이 책을 읽어보고 학생들과 군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싶으면 리스트를 만들어 서점에서 구입하고, 중복되지 않게 각 학급에, 각 내무반에 보내고 있다. 또한 책을 잘 받았는지, 책이 아이들 손에 쥐어졌는지 직접 가서 확인까지 하는 그야말로 순수한 열정으로 손과 발을 혹사시키고 있다.

책은 원한다고 해서 아무나, 아무데서나 받을 수 없다. 꼭 책을 놓을 수 있는 수납공간이 학급에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또 책을 쉽게 사 보거나 빌려볼 수 있는 곳보다 낙도의 학교와 부대가 우선 순위다. 사실 학교 도서실에 보내면 그만인 것을 굳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남다른 이유가 있어서이다. 이 사업을 시작하던 무렵 문이 잠겨있는 학교 도서실에 책이 비치될 뿐 아이들의 손에 책이 쥐어지지 않는 것을 본 후부터 받을 학교의 학급수가 몇 반인지 책장이 비치되어 있는지 아닌지, 각 학급에 들어갈 책이 중복되지 않았는지 고생스럽게 알아보고 직접 전달하는것을 철칙으로 여기고 있다. 고집스럽지만 참으로 옳은 일이다.

게다가 무슨 일이 있어도 돈이든 책이든 기부를 받지 않았다. 가까운 친구들이 좋은 일 한다며 격려하는 의미로 전하는 작은 정성조차 받지 않았다니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도 단순한 이치라고 설명한다. 그저 마음이 즐거우려 시작한 일인데 물질을 받는 순간부터는 작든 크든 구속이 생기고 부담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자신의 것을 나누어주는데 오히려 기쁨을 느끼는 두 분을 보며 하늘 아래 제 것이 없음을 이미 깨닫고 스스로의 삶을 풍족케 하는 지름길을 찾은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뿐이다.

이런 마음으로 일구는 일이기에 일회성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책을 보낸 학교나 군부대는 멀든 가깝든 지속적으로 찾아가고 강연도 한다. 시작은 책을 사랑하자는 주제였지만 강연도 연륜이 쌓여 인생후배들에게 조언해주고 싶은 모든 분야가 다 이야기거리가 되었다.

“책을 사려면 먼 길을 가야했는데 마음놓고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며 자기도 크면 꼭 할아버지처럼 될 거라는 손때 묻은 낙도 아이의 감사편지나 청년 시절부터 아이아빠가 된 후까지 명절 때마다 잊지 않고 찾아오는 장교를 볼때면 지금 하고있는 일에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감동의 순간들이 모여 따뜻한 인연의 끈이 되고 이렇게 만들어진 작은 공동체가 나이를 초월한 소통을 가능하게 합니다”
욕심내어 일하지 않고 묵묵히 책을 보낸 결과는 이제까지 15만권이 넘는다. 국내뿐 아니라 미국 아리조나 주립대 한국어학과에도 2000년부터 5년 동안 2만불 어치의 책을 기증하기로 약속했는데 지금껏 빈틈없이 이행하고 있다.

남다른 인생의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배려도 남다르다. 이성원 이사장은 평생의 본업을 접고 사회에 공헌할 수 있고 자신들에게도 기쁨이 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과정을 모두 아내와 함께 했기에 지금 아내 민용자 씨는 사무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파트너이자 조력자가 되었다. 닮고 싶은 모습이다. 부부가 서로 호흡을 맞춰가며 아름답게 노년을 일구는 것도 그렇지만, 자신이 사회로부터 받은 것을 자기만의 것으로 움켜쥐지 않고 고스란히 사회로 환원하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도리어 그것을 즐거워하는 모습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덕목이 아닐까. 나부터 먼저 내어주면 하나씩 하나씩 닫힌 문이 열리고 사회도 조금씩 변해간다는 것을 경험으로 보여준 까닭이다.

아직도 두 분은 걱정이 많다. 마을마다 도서관이 있는 외국에 비하면 책을 접하기 어려운 아이들이 많고, 책이 주위에 쌓였더라도 아직도 책 읽는 습관이 안 되어있기 때문이다. 입시위주의 교육 현실로 인해 교과서 보기에 급급한 아이들이 더 많기에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오늘도 전화를 붙들어 책 전할 곳을 찾고, 낙도의 학교 가는 길을 묻고, 부지런히 강의노트를 챙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