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줌마들, 씩씩해요. 여기 저기 배우러 다니는 것도 많아요. 정말 바쁘게 살아요.” 한국에서 생활한 지 5년이 지난 바야르 씨.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절반뿐이 알아듣지 못해 답답할 때가 많다는 그녀이지만 막상 이야기판이 벌어지면 목소리며, 표정이 달라진다.
“몽골에서는 아내들이 돈 버는 일을 많이 해요. 무거운 것도 혼자 척척 들고 모든 일을 열심히 해요.” 억척스럽게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것이 한국과 몽골 ‘아줌마’의 닮은 점이라고 말하는 바야르 씨. 계속 말을 이어가는 동안 절로 흥이 나는지 목소리의 톤이 한 옥타브는 올라간다.
“1주일에 세 군데를 다니며 공부해요. 빨리 빨리 배워야 뭐든지 할 수 있잖아요. 몽골에서는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월급을 받으면 바로 쓰죠. 만약 아프기라도 하면 어쩔 건지 돈을 저금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없어요.”
몽골에서 러시아와 중국을 오가며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던 바야르 씨가 한국남자를 배우자로 선택한 가장 큰 이유도 꼼꼼하게 자산을 관리하는 남편의 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오늘을 준비하는 모습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한국의 아줌마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몽골 친구들에게 한국 사람들이 정말 부지런하고 열심히 산다고 자랑을 하죠. 친구들이 엄청 부러워해요. 하지만 이웃사람들끼리 너무 모르고 지내는 것은 안 좋아요. 몽골에서는 문을 열어두고 살아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요.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다 알죠. 그런데 한국에서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르고, 무슨 일이 생겨도 도움을 청할 데가 없어요.”
어느새 ‘씩씩하고 바쁘게 사는’ 한국 아줌마가 다 되어버린 바야르 씨에게 한국의 이웃사촌들은 여전히 꼭 닫힌 아파트 현관문, 텅빈 놀이터의 이미지로 남아있다.
모델 일을 했던 경력 때문인지 노이싯 씨의 외모는 유난히 돋보인다. 페루에서 스튜디어스를 준비하던 중 남편을 만나 한국에 온 지 여섯 해가 되었다는 그녀에게서 아줌마의 모습을 찾기 어렵다. 여섯 살과 세 살 자녀를 둔 엄마라는 소리에 또 다시 놀란다. 빼어난 외모 때문인지 그녀는 동네 사람들에게 꽤나 인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사람들이 모두 다 아가씨라고 불러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이웃에 사는 동네 할머니와 아줌마들과 친하게 지냈어요. 사투리도 많이 배우고 재미있게 지냈어요. 그런데 그게 좋은 것만은 아니었어요. 조금 친해지니까 ‘어디에서 왔니?’ ‘몇 살이니?’ ‘남편은 뭐하니?’ 이런 말들을 자꾸만 묻는 거에요. 말을 잘 하지 못하니 대답도 잘 못하고 웃기만 할 때가 많았죠. 자기 집에도 가자고 하고, 우리 집에도 온다고 했어요.”
얼마 후 노이싯은 풍문으로 들리는 자기에 대한 소문에 마음이 크게 상했다고 한다. 길을 걸어갈 때도 사람들의 곱지 않은 눈길에 꽤나 마음 고생을 했다는데.
“한국 아줌마들은 자기 일이 아니라고 다른 사람 이야기를 너무 쉽게 말을 하는 것 같아요. 내가 마치 물건이라도 된 것처럼 수근거려요. 돈으로 사서 한국에 왔다는 식으로 말예요. 내가 남편을 사랑해서 한국에 왔는데도 자기들 생각대로 말을 하는 거에요. 페루에서는 자기 일이 아닌 것은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아요. 친척이 아니면 집에 초대도 잘 하지 않죠. 대부분의 주부들은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만으로도 바빠요.”
언젠가부터 노이싯은 앞만 보고 길을 간다. 누가 흘깃거리며 쳐다봐도 마음 상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웃에서 말을 걸어도 예전처럼 마음을 활짝 열지 않는다. 다행히 여수YWCA에서 친구들을 사귀고, Y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닫혔던 마음이 조금씩 열리는 중이다. 그럼에도 자기 이야기를 마음대로 다른 사람에게 옮기는 행동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