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과 새해가 가까워오는 세모의 길목에서 과부의 동전 두 닢이 지니는 의미를 묵상합니다. 미국에 살고 계시는 교포들에게 강연하러 갔다가 보고 온 사건입니다. 총명하고 어여쁘고 장래가 촉망되는 교포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새로 공부하러 유학 간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접근하여 사랑을 고백하고 청혼을 했습니다. 둘은 혼인하여 딸을 낳았는데 딸이 자라나면서 정신지체임이 드러나자 남자가 책임을 기피하고 사라졌습니다. 남자는 미국 교포 아내 덕에 시민권자가 되어 자유롭게 미국에서 살게 되었으며, 여자는 정신지체인 딸을 혼자 기르는 이혼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녀에게서 그해 성탄에 맞추어 카드가 오고 그 카드 속에 100달러가 들어있었습니다. 카드에는 "저희보다 더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을 위하여 써 주십시오"라고 적혀있었습니다. 헌금함에 넣는 과부의 동전 두 닢을 보시며 가슴이 미어지셨을 그리스도의 마음이 어떤 것이었을까 짐작하였습니다. 그리스도는 오늘도 과부의 동전 두 닢을 나누는 손길을 칭찬하십니다.

경제적으로 모두가 다 힘든 오늘날, 어디선가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미지의 이웃을 위해 우리가 후원금을 보낸다는 것은, 그 일이 이미 기적입니다. 왜냐하면 그 일은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고 오직 성령의 도우심으로서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시면 아무도 회비를 보낼 수 없습니다. 후원금을 보내는 것은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전혀 예기치 않았던 전화를 받고 어느 저녁 식사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전 대법관과 현 부장판사와 큰 기업의 회장님 두 분과 회장님의 친구 두 분, 이렇게 모였습니다. 회장님 친구가 말씀하셨습니다. "회장님께서 교수님의 수상집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과 『고통이 있는 곳에 행복을』 두 권 책을 4천 권 구입하여 2천 명 직원에게 두 권씩 나누어준 10년 전에, 회장님은 친구인 대법관에게도 두 권을 주셨는데, 그 대법관이 10년 후 정년퇴직을 맞아 서가를 정리하다가 그 책을 읽고 마음으로 감동하여 같은 책 100권을 구입해서 친구인 나에게도 주었으며 나도 읽고는 놀라 20권을 사서 내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우리는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지방법원의 부장판사인 분은 "나도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았는데 놀라서 50권을 구입하여 친지들에게 보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차례차례 책을 읽게 된 과정과 그것을 구입하여 이웃에 나누어준 일들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날 집에 돌아와서 나는 오래오래 그분들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런 분들과 성가원의 후원회원들은 나에게 있어서는, 아니 성가원에 있어서는 수술 받는 환자에게 투여되는 생명의 피 같은 존재이고 그리스도의 가슴은 그런 헌혈자의 선행 목록을 품고 계시는 금고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금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귀중한 재물들을 금고에 보관합니다. 소중한 것 가운데에서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면 그 소중한 생명은 어느 금고에 넣어주어야 합니까? 그것은 바로 세상에서 내가 무엇인가를 나누어 준 사람의 가슴이고 그 가슴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가슴입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의 가치는 나눔에 있고 나눔 행위의 아름다움은 그것을 받은 사람의 가슴 속에 살아남으니, 생명의 금고는 사랑의 나눔을 체험한 사람들의 가슴 속이고 그것을 보고 기뻐하시는 그리스도의 가슴 속입니다.

'타이타닉'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1,500명을 실은 영국의 퀸 엘리자베스 호가 미국으로 가는 첫 항해에서 침몰하여, 오직 여덟 명만 살아남았던 실화소설을 영화화한 것입니다. 그 배에는 20명을 태울 수 있는 20개의 구명보트가 있었습니다. 차례로 순서 있게 탄다면 모두 다 살 수 있었는데 배가 침몰하는 위기에 처하자 사람들이 저만 타겠다고 달려드는 바람에 사람들을 20명씩 태우지 못하고 성급하게 보트들이 바다 위로 내려졌습니다. 게다가 배에 탄 사람들은 바닷물에 빠져 얼어 죽어가는 사람들 쪽으로 다가가지 않습니다. 잘못하면 배가 전복하여 타고 있는 사람도 죽을까봐 염려해서입니다.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있는 한 여성은 뱃전에 손을 올려놓고 살려 달라 애원하는 사람을 뾰족한 반지로 찔러 바다 속에 밀어넣고, 구명보트를 혼자 타고 내려온 일등칸 귀부인은 품에 안고 있는 고양이를 고집하면서 사람 한 명 더 태우기를 거부했습니다.

지금은 연말, 20명을 태울 구명보트에 나 혼자 앉아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할 시간입니다. 사람을 태우다가 배가 전복될까봐 얼어 죽어가는 사람을 향해 노 저어가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하는 회개의 시간입니다. 내가 탄 배에 다른 사람을 한 명 더 태우기 위해서는 배 안의 공간을 비워야 합니다. 내가 차지한 공간을 줄임으로써 주님이 한 사람을 더 태우시도록 말구유 같은 자리를 마련해 드리는 것입니다. 나는 기도합니다. "주님, 복음말씀대로 살 용기와 사랑을 허락하소서. 이번 성탄에는 가장 곤궁한 사람 속에서 주님을 만나게 하소서."

칼 라너는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줄 때,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줄 때, 바로 그 자리에 주님이 현존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나눔을 결행하신 후, 하늘을 우러러 보세요. 주님 얼굴이 거기 보일 것입니다. 웃고 계시는 주님 얼굴이 보일 것입니다. 이제는 무릎을 꿇고 주님에게 다가가 마음과 심장의 나병이나 에이즈 병을 보여드리며 고쳐 달라고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이기심이 우리의 나병이고 에이즈 병입니다.

성탄과 새해가 가까워오는 세모의 길목에서 과부의 동전 두 닢이 지니는 의미를 묵상합니다
 
※ 이인복 원장은 폭력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을 위해 나사렛 성가원을 설립, 나눔을 실천한 장본인으로, YWCA와 한국씨티은행이 수여하는 제6회 한국여성지도자상 대상을 수상하였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