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웅 붕붕……."

'아, 어떻게 된 일이지?' 다쥐는 가느다란 파이프를 간신히 붙잡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보이는 것은 먹물 같은 어둠뿐. 간밤에 기온이 뚝 떨어져서 새벽녘에 트럭의 엔진으로 기어들어와 잠이 들었는데, 그 사이에 트럭이 어디론가 이동을 하는 것 같았다.

이리저리 흔들거리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엔진이 따끈따끈해졌다. 다쥐는 위험한 것도 잊은 채 언 몸을 데웠다. 그렇지만 행복감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실수로 왼쪽 발이 엔진에 닿는 순간, 다쥐는 외마디 소리를 내질렀다.

"앗 뜨거!"

그 순간 파이프를 놓쳤고, 주먹만한 다쥐는 엔진 사이로 굴러 떨어졌다.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다쥐는 필사적으로 손을 내뻗었다. 다행히 손끝에 무언가가 닿았다. 다쥐는 손가락에 잔뜩 힘을 주고 가느다란 그것을 꽉 쥐었다. 그리고는 또다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으아아!"

엔진으로 연결되는 호스인지 그것도 사정없이 뜨거웠던 것이다. 다쥐는 또 한 번 나뒹굴었고, 끝내 차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몸이 얼음같이 차가워지면서 눈앞이 캄캄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쥐는 오들오들 떨면서 살그머니 눈을 떠보았다. 다행히 길가 마른 풀더미 위였다. 차에서 떨어지면서 서너 바퀴를 구른 뒤 풀섶에 이른 게 분명했다.

다쥐는 이제 자신의 운명이 다했음을 눈치챘다. 팔다리의 기운이 빠지고 눈앞이 침침했다. 다쥐는 힘겹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잿빛 하늘,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지난 1년은 가슴 벅차고 멋진 날들이었다. 사형수를 만난 일이 무엇보다 또렷이 떠올랐다. 다쥐는 입을 오물오물 움직여 자신이 기억하는 인간들의 말을 천천히 곱씹어보았다.

"사랑, 고양이, 웃음, 우정, 무더위, 옥수수, 광우병, 죽음……."

다쥐는 죽음의 의미를 떠올려보았다. 앞이 안 보이는 어둠과 알 수 없는 두려움. 어쩌면 연기처럼 잿빛 하늘로 스러지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때, 벚꽃잎 하나가 사르르 콧등에 내려앉았다. 꿈인 듯 눈앞이 아득했다. 어, 그런데 꽃잎이 하나가 아니었다. 나풀나풀 하나둘 보이더니, 순식간에 잿빛 하늘을 뿌옇게 가렸다. 그제야 다쥐는 꽃잎이 첫눈임을 알았다.

졸음이 몰려왔다. 다쥐는 야틈한 언덕 아래 짚더미를 향해 비틀비틀 걸어갔다. 눈부신 햇살, 고소한 생선살, 연초록 새순, 새빨간 사과, 귀를 간질이던 새소리와 물소리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다쥐의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가 떠올랐다.

다쥐는 더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짚더미 옆에 고꾸라졌다.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머릿속이 휑하니 비는 기분. 그 순간, 사람 발자국 소리가 나고 "박사님. 여기요, 여기!"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다쥐는 갈증을 느끼며 힘겹게 눈을 떴다. 그리고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십자가처럼 손발을 벌린 채 묶여 있는 게 아닌가. 다쥐는 어렵사리 머리를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얀 가운을 입은 한 아가씨가 걸어왔다. 다쥐는 얼른 눈을 감았다. 바람소리처럼 부드러운 아가씨의 말소리가 들렸다.

"이 녀석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보네."

다쥐는 슬쩍 눈을 뜨다가 기겁하고 말았다. 살벌한 주사 바늘이 자신을 향해 내려 꽂히는 게 아닌가. 다쥐는 달아나려고 발버둥 쳤다. 그러자 뜻밖에도 아가씨가 기쁜 목소리로 소리쳤다.

"박사님! 얘 깨어났어요. 깨어났다고요!"

아가씨처럼 흰 가운을 입은 남자 두 명이 달려왔다. 그리고 뭐가 신기한지 다쥐를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그 중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자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쌩쌩한 걸. 지금 바로 시작해도 되겠어."

옆에 서 있던 아가씨와 다른 남자들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쥐는 도대체 뭐가 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뭐하세요?" 하고 간신히 물어봤지만, 힘들어서 그런지 '찌익 찍'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잠시 뒤, 흰 머리 박사는 다쥐를 고양이만한 유리병 속에 밀어 넣었다. 유리병은 돋보기를 서너 개 겹쳐놓은 것처럼 두꺼웠다. 다쥐는 병 속에서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근데, 박사님 과연 냉동 쥐가 되살아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개발한 물질을 이용하면 심장이 다시 뛸지도 몰라."

'냉동 쥐라고?' 다쥐의 가슴이 북처럼 둥둥둥 울리기 시작했다.
흰머리 박사가 유리병의 두꺼운 뚜껑을 닫았다. 그러자 뚜껑에서 갑자기 쉭쉭 소리가 나며 푸른 가스가 새어나왔다. 다쥐는 병을 깨뜨릴 듯이 두드리며 몸부림쳤다. 어? 그런데 가스의 향이 달콤했다. 이렇게 달콤한 냉동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입속에 침이 고이면서 다쥐의 몸이 천천히 풀렸다. 눈도 스르르 감겼다. 이윽고 다쥐의 몸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졌다. 그러자 흰머리 박사가 아가씨에게 말했다.

"지금 빨리 영하 196℃의 질소탱크 속에 넣어."

아가씨는 다쥐가 든 병을 끌어안고 어디론가 달렸다. 냉동실이라는 팻말이 보이자 아가씨가 중얼거렸다.

"1년 뒤에 보자. 꼭 봐야 한다!"

과연, 다쥐는 과학의 힘으로 되살아날 수 있을까요?
 
※ 이번 호로 '다쥐 이야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