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을 싸서 다니는 게 익숙해지고 난 뒤로 나에게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도대체 사람들은 자신이 돈을 주고 사 먹는 음식을 어떻게 믿고 먹는 것일까? 요새 어지간한 집에서는 MSG를 포함한 조미료를 쓰지 않고 요리하는 것이 상식이 되어 있다. 그게 몸에 좋은 것은 물론이고 맛도 깔끔하다고 다들 얘기하지 않나? 그런데 어느 식당이 조미료 없이 장사하는 집이 있기나 한가? 또 집에서는 웰빙이다 뭐다 해서 값비싼 유기농 음식들을 사다먹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식당에서도 같은 재료를 쓴다고 기대하는 걸까? 중국산 재료라면 치를 떠는 그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는 식당에서 중국산 재료를 빼고 먹을 게 얼마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이들에게만큼은 좋은 걸 먹이려고 무진 애를 쓰는 사람들은 많이 봤지만, 식당에서 재료를 꼼꼼히 따져서 아이에게 사 먹이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멜라닌인지 멜라민인지 하는 물질이 몸에 나쁘다고 난리법석이었지만, 그것보다 안 좋은 물질이 많이 들어 있는 가공식품들이 넘쳐난다는 것은 상식이지 않는가 말이다. 광우병 쇠고기도 대통령부터 먹기 싫으면 먹지 말라고 얘기하기는 했지만, 집에서야 어떻게 안 먹는다고 쳐도, 수많은 식당들에서 먹는 밥에 들어있는 쇠고기를 어떻게 다 검사한단 말인가?

집에서는 상추를 한 잎 한 잎 꼼꼼히 씻고, 그릇도 하나 하나 세제가 남을까 세균이 있을까 꼼꼼히 씻어 먹는 사람들도 하루에 수천 장의 상추와 수천 개의 그릇을 씻어야 하는 식당 사람들에게 그렇게 할 것을 기대해도 되는 걸까? 숯불구이를 하고 난 불판을 한 번이라도 씻어본 사람이라면, 하루에 수백 장의 불판을 씻어야 되는 고깃집 사람들이 편하게 독한 세제를 쓰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식당 사람들이 나쁘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을 해보자. 생전 처음보는 사람들이 푼돈 달랑 주고 밥을 달라고 한다. 이 사람들은 또 올 수도 있지만 안 올 수도 있다. 괜히 특별한 맛을 냈다가 맘에 안 들면 다시는 안 온다. 어떤 사람도 한 끼 밥을 먹고 여기에 무엇이 들었는지, 어떤 좋은 재료와 어떤 나쁜 재료가 쓰였는지 중국산이 쓰였는지 국산이 쓰였는지 유기농이 쓰였는지 유전자조작식품이 쓰였는지 알 수는 없다. 또 애써 준비한 음식을 고맙게 먹기는커녕 반 이상 남겨서 버리기 일쑤다. 좋은 재료 쓴 것이 아깝고, 애써 만든 품이 아깝다. 그저 남들 다 하는 것처럼 평범하고 무난하게, 조미료 맛이면 충분하다. 다들 입맛 자체가 값싼 재료와 조미료에 길들여진 저질 입맛이라서 오히려 더 좋아하기도 한다.

게다가 이 사람들은 어떤 메뉴를 시켜도 5분 안에 나오지 않으면 난리를 친다. 물 한 컵 제 손으로 떠 먹기를 하나 수저를 놓기를 하나, 자기 먹은 그릇을 정리라도 해 놓는 사람이 있기를 하나, 양반에 상전이 따로 없다. 심지어 전화로 배달해 달라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일회용기와 석유를 먹고 시끄럽기나 한 오토바이도 쓰지 않을 수 없다. 또 어찌나 먹지도 않을 반찬 가짓수는 늘이라 하고 그릇은 자꾸 달라고 하고 불판은 또 그렇게 자주 갈아달라고 하는지 한 테이블 당 설거지 할 그릇만 수십 개다. 일은 어렵고 고되지만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 돈이라도 많이 벌리지 않으면 이 짓을 왜 하겠는가? 티나지 않게 싸구려 재료를 쓰고 덜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방법의 유혹은 이미 넘쳐난다. 손님에 대한 애정? 음식에 대한 자부심? 일에 대한 보람? 그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식당에서 돈을 주고 음식을 사고 파는 행위, 그 자체가 나에게는 하나의 미스터리다. 돈 받고 음식을 파는 사람이나 돈 주고 음식을 사먹는 사람이나 결코 서로 믿을 수 있다거나 함께 행복하다거나 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 이 상황을 다들 어떻게 견뎌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간단히 도시락을 싼다. 나 때문에 수고스럽게 다른 사람에게 일을 떠넘겨야 할 필요도 없다. 있는 반찬을 그냥 담기만 하면 된다. 점심시간마다 그저 그런 식당들 중 어느 식당을 가야할지, 어떤 메뉴를 골라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만들 수 있는 음식의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나도 음식을 잘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다 보니 점점 늘게 되고, 그것이 또한 즐거움이 된다. 집에서는 여성의 일로 강제되고, 식당에서는 지겹고 고된 노동일 뿐이지만,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원래 즐거운 일이다. 또 자기가 한 음식은 다 맛있다. 꺼림직한 조미료나 가공식품은 안 쓰면 그만이다. 믿을 수 있는 생협 등을 통해서 고이 키운 유기농 재료도 기꺼이 쓸 수 있다. 도시락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를 유기농 재료로 써도 식당에서 정체불명의 음식을 사 먹는 것보다는 훨씬 싸다. 또 나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채식을 하는데, 비싼 채식 식당을 가거나 주문할 때마다 뭐가 들었냐고 묻고 또 일일이 빼달라고 실랑이 할 필요도 없다. 도시락을 같이 먹을 수 있는 동료가 있다면 더 좋다. 사람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다양한 종류와 다양한 개성을 가진 음식을 한 자리에서 맛 볼 수 있다. 또 서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얘기도 하고, 칭찬도 하다 보면 다들 점점 더 맛있는 도시락을 싸게 된다. 식당 찾는 시간, 음식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 없다 보니 점심시간도 한결 여유로워진다. 주변에 공원이라도 있으면 도시락만 들고 가면 바로 소풍 분위기로 전환된다. 음식을 남겨서 버리는 일도 없어져서 귀한 음식이 음식 '쓰레기'가 되는 비극도 끝난다. 또 집에서 음식을 많이 하게 되니까 집에서 식구들과 같이 식사를 할 기회도 늘어나서 좋다.

우리는 밥을 짓지만, 밥은 우리를 만든다. 김치를 먹는 사람에게는 김치향이 나고, 카레를 먹는 사람에게는 카레향이, 버터를 먹는 사람에게는 버터향이 나기 마련이다. 가부장적인 밥, 자본주의적인 밥, 육식위주의 밥, 생명파괴적인 밥을 먹는 사람에게는 어떤 냄새가 날까? 여성의 눈물과 노동자의 땀, 동물의 피와 생명의 한이 뒤섞인 복잡한 냄새가 나지 않을까? 본래 자신의 냄새는 스스로 잘 맡지 못하는 법이다.

오토바이퀵을 대신해 환경친화적인 자전거 메신저로 활동하고 있는 지음 씨는 '스스로 만든 도시락' 예찬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