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모 이사는 현재 한국소비자연맹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분초를 나눠쓰는 바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정 이사는 한국소비자연맹의 창립멤버이기도 하다. 1970년에 만들어진 한국소비자연맹은 지난 1월, 39주년을 맞았다.
“지난번에는 일본 소비자단체들이 방문해 한국의 소비자 운동에 대한 설명을 듣고 돌아가기도 했지요.”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한국의 소비자 운동과 쇠퇴하고 있는 일본의 소비자 운동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자생력’이라고 말하는 그의 말투에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그는 “우리나라 소비자 운동은 정부에 소속되지 않고 민간의 영역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했으며 오히려 정부가 소비자보호법을 만드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이토록 정 이사가 긴 시간 동안 투신해온 소비자 운동을 처음 시작하게 된 것은 언제였을까. 그는 서울Y 이사를 지내던 60년대,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접했고 그 중 소비자 운동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당시 서울Y 사진을 찾아보면 그 시절 싹트기 시작한 소비자 운동에 열을 올리고 있는 정 이사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그는 대한YWCA연합회 실행위원(79년~82년)을 비롯해 서울Y 회장(85년~89년)까지 Y와 깊은 인연을 맺어 왔다. 그렇지만 Y에서 일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이냐는 물음에 역시 ‘소비자 운동을 시작한 것’이라고 답했다. 또 금모으기 운동을 시작한 것도 꼽았다. 정 이사는 IMF 당시 시민단체들 사이에서 금모으기 운동을 주도한 장본인이었다.
그와 Y의 첫 만남은 어땠을까. 정 이사는 한국일보 기자로 일하던 1960년대 초, 서울Y 기숙사에서 살았다. 그때 서울Y의 여러 가지 일을 도와주며 Y와 인연을 맺었다. 서울Y가 정부사업 때문에 Y의 땅을 빼앗기게 되었을 때, 정 이사는 보상을 받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당시 서울Y 박순양 사무총장이 연합회에서 서울Y로 이어지는 자리에 길을 낸다고 정부가 통보하자 걱정을 많이 했지요. 그래서 나는 바로 국무총리실로 가서 Y처럼 모범적인 기관에 이런 불이익을 줘서야 되겠냐고 따졌지요.”
당시 정 이사는 주목받는 여성기자였다. 평화신문, 서울신문, 연합신문을 거쳐 한국일보에서 30년 동안 기자인생을 살아왔으며 청와대 출입 여성기자 1호이기도 했다. 이런 그가 기자직에서 은퇴했을 때 정계에서 러브콜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NGO 단체에 남기로 했다. ‘감투쓰고 남에게 명령하는 것이 성격에 영 안맞아서’, 그리고 ‘여든 살까지 현역으로 일하고 싶어서’가 그 이유였다. 그는 민간단체에서 발로 뛰며 자유롭고 즐겁게 일을 하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었다.
 
소비자 운동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YWCA가 매년 시상하고 있는 한국여성지도자상에 제2회(2004년)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 당시 정광모 이사는 “여성지도자상 수상자답게 낭비 없는 시간을 갖겠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그 약속을 지키려는 듯 소비자 운동과 에이즈예방 운동을 위해 지금도 빈틈이 없는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지금도 현역으로 바쁘게 지내는 그에게 건강비결을 묻자 그는 “학창시절에는 여러가지 운동을 했다. 정구, 투창, 투포환 등 운동이라면 대부분은 좋아하고 잘했다”고 말했다. 그런 그는 Y(young)와 잘 어울렸다. 책임감과 철저한 자기관리 또한 그의 젊음의 비결이였다. “나는 늘 새벽 1시에서 2시 사이에 일어나요. 소비자들이 보낸 이메일을 확인하고 정성들여 답장을 합니다.” 그는 소비자 운동에 필요한 것은 따뜻한 배려와 정성이라고 생각했다. 소비자들은 피해를 당했을 때 하소연할 데가 없어서 억울해만 하다가 소비자 단체에 메일을 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비자의 상황이나 가능한 보상에 대해서 최대한 고민하고 걱정해가며 긴 답장을 쓰고는 했다. 또 모든 고발장에는 하루 안에 답장을 보내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그는 YWCA에 애착을 느끼는 만큼 약이 되는 쓴소리도 서슴지 않았다. “Y가 발전하려면 훌륭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요즘에는 NGO들이 모두 전문화된 만큼 젊은 전문인력도 많이 끌어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국제화된 흐름에 발맞춰야 한다고도 말했다. “YWCA도 국제적인 흐름에 좀 더 민감해져야 합니다. 유럽이나 중남미, 중동, 동남아 등의 YWCA와 연대해서 세계적인 움직임을 빠르게 파악해야 합니다. 또한 국제감각을 가지고 Y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을 찾는 일도 중요하죠.”
Y의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를 귀띔하기도 했다. 그는 “사회단체가 많아지고 있는 만큼 Y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며 교회를 기반으로 한 고령자, 청소년, 어린이 운동을 펼쳐나가면서 신도들과 Y 모두에 도움이 될 운동을 구상한다면 Y의 저변을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정 이사는 소비자 운동과 금연 운동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직도 할 일이 너무나도 많은 그는 바쁜 중에도 활기차고 즐거워 보였다.